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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아버지 신앙을 가장 정확히 꿰뚫어 본 누가복음

【갈릴리 예수산책】 예수와 아버지

 

예수님의 아버지 신앙을 가장 정확히 꿰뚫어 본 누가복음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부르신 아버지의 구체적인 속성을 풀어준 기가 막힌 책이다. 고대 시대를 사셨던 예수님이 아무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해도 구약의 전능한 엘로힘과 만군의 하나님, 만왕의 왕 여호와 츠바오트와 다를 게 없는 이유가 있다. 동양에서 군사부일체라 하여 왕과 스승과 아버지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공경하라고 한 것처럼, 예수님 당시에도 왕이나 아버지는 여전히 전능한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생사여탈권을 소유한 당시의 아버지의 권위는 국가의 법을 초월해 있었다.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 자식의 목숨보다 아버지의 명예가 더 중요한 시대에 아버지는 자녀들에 대한 명예살인을 집행할 수 있었다. 개인보다는 집단과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그 시대에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아무리 예수님이 아버지와 친밀하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알아서 입에 아버지를 달고 다니셨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버지 하나님이 구약의 창조자 하나님, 전능자 하나님, 만왕의 왕 하나님과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지 실감할 수 없는 시대였다. 예수님이 부르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아버지인가? 그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자녀들을 감옥에 쳐 넣을 수 있는 잔혹한 분 아닌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자녀들에 대해서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꺾는 분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아버지 호칭에 여전히 의구심을 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새로워질 것은 없으니까.

 

그래서 누가복음은 이 의심의 눈초리에 답이라고 하겠다는 듯 예수님의 아버지 신학을 펼쳐 보인다. 그것도 이야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풀어놓는다. 15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다. 이 비유는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는 휴먼 드라마가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은유적 이야기로 설명해 낸 위대한 신학이자 인간학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타락과 비참, 그리고 돌이킴과 회복의 인간론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부르는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장 구체적으로 설명해 낸 위대한 신론이다. 이 짧은 비유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섬기는 아버지는 이런 분이라고 소개하신다. 대략 7가지 모습을 보여주신다.

 

죽기 전에 유산을 상속해 달라는 패륜적인 아들의 요구를 속절없이 받아주는 아버지(12절), 떠나는 아들을 잡지 못하는 아버지(13절), 떠난 아들을 한없이 기다리는 아버지(20절), 아들을 보고 체면 따위 무시하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아버지(20절),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20절), 아들의 패륜적 과거를 잊고 제일 좋은 옷, 가락지, 신발, 살진 송아지를 잡아 환영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22, 23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밝히는 아버지(31절).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은 더 이상 가부장 시대의 권력자가 아니다. 강력한 힘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다스리는 왕도 아니다. 군대 사령관처럼 군인들을 명령하고 통솔하는 무서운카리스마도 아니다. 이 비유에서 밝히는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은 풍요롭고 모든 것을 가진 분이지만 자식에게 하염없이 자애로운 분이다.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자식의 의사결정 또한 매우 존중하는 분이다.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여 떠나도 자식이 내린 결정이기에 아프지만 잡지 않는 분이다. 그리고 속앓이를 심하게 하시는 분이다. 떠난 자식의 고통을 덜어줄 힘이 있지만 자식의 독립성을 존중하여 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저 자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분이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자식에게는 자신의 영광과 권위와 지위를 잊고 달려가 입을 맞추고 품에 안는 분이다. 과거의 모든 잘못을 망각하고 현재의 자식의 모습만을 기뻐하는 분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베푸는 분이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이 새롭게 그려내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은 가히 혁명적이다. 구약에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어려운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무리 좋은 아버지라 하더라도 자식에게 죽기 전에 유산을 물려주면서 끌려다니는 아버지는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요,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하나님이요,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리는 하나님이요, 먼저 찾아오시는 성육신의 하나님이요, 인간에게서 측은지심을 느끼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요, 돌아온 죄인을 향한 용서의 하나님이요, 인간의 회복을 하염없이 기뻐하는 하나님이요,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으시는 일치의 하나님이다. 이야말로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신론의 핵심 중의 핵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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