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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아버지 신앙”의 세 가지 특징

【갈릴리 예수산책】 예수와 아버지

 

예수님의 “아버지 신앙”의 세 가지 특징

 

이제 예수님이 그토록 자주 익숙하게 부르시고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이름, “아버지 하나님” 신앙의 특징을 요약해 보자.

 

첫째, 예수님의 아버지 신앙의 가장 독특한 것은 개인성이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단독자의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개인의 하나님을 강조하셨다. 이것은 당시 사회구조에서 지극히 파격적인 생각이다. 고대사회란 집단사회다. 특히 가족집단이 가장 중요했다. 모든 것을 집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회이다.

 

엘로힘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다. 여호와 츠바오트는 이스라엘 국가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군대의 여호와다. 아도나이 또한 포로된 이스라엘 민족의 주인이지, 개인의 주인은 아니다. 아간의 범죄로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받는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는다. 아브라함 한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되면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 요셉 한 사람이 성공하여 그의 가족이 호강했다. 모든 신앙은 가족과 민족과 국가에 얽혀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또한 민족의 구세주요 국가의 구원이었지, 한 개인의 메시아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개인의 아버지 하나님을 강조하셨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다. 백 마리의 양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서라도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야 한다. 여러 남편과 살았던 여자가 부활 때 어느 남편의 아내가 되어 하나님을 맞이하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단독자로서 하나님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부를 때 “나의 아버지” “내 아버지 집” “너의 아버지”라고 하셨다. 물론 “우리 아버지” 혹은 “너희 아버지”라는 공동체적인 면도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 우선적인 것은 개인의 내면적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였지, 결코 집단이나 공동체의 신앙 대상으로서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인간이 신을 만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단독자로서의 체험이요, 한 영혼의 영원한 생명이 걸린 근원적 차원이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다. 군사부일체의 아버지도 아니고, 자녀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명예살인을 일삼는 폭력적인 당시의 아버지는 더더욱 아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악인과 의인 모두에게 비를 빛을 주시는 공평하신 분이며, 자녀의 은밀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자,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격적이라는 말은 공평이나 자비의 차원을 넘어선다. 자녀의 생각과 의지를 존중하신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아들 비유가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인격성이다. 자녀의 의사결정을 들어주고 받아들이며, 비록 속앓이를 할지언정 강제로 막아서지 않으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아버지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일방적이라고 이해하는 일이 많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면서 기뻐하든 푸념하든 결국엔 하나님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하신다는 생각이다. 나의 의지와 뜻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당신 마음대로 나의 길을 이끌어 가신다는 신앙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를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갈 때에도 겟세마네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심각하게 의논했다. 그리고 자신이 결단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하나님 아버지와 일방적으로 관계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지극히 인격적인 아버지이셨기 때문이다.

 

셋째, 예수님의 아버지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내재성이다. 떠나지 않으신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가장 강력한 특징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서로 거한다. 아버지는 멀리 계셔서 돈만 부쳐주는 부자가 아니다. 항상 내 곁에서, 심지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기뻐하시고 도우시고 동행하신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하셨다.

 

구약의 엘로힘과 여호와 츠바오트가 초월의 하나님이었다면, 예수님의 아버지는 내재의 하나님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는 존재라고 고백했다.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가 신앙의 기본관계였고,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가 거룩의 출발이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질적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우리 사이의 거리는 결코 가까울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와 거리를 두어야 경배받으시기에 좋다. 하나님은 우리와 멀리 계셔야 더 거룩하다. 철저하게 타자화된 하나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내재화하셨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구성 안에서 아버지는 타자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말을 걸 수 있는 또 다른 나이다. 아버지는 나를 낳으신 존재의 근원이다. 따라서 나는 아버지의 형상을 공유한 존재이다. 나의 외모,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모두가 아버지를 닮았다. 나와 아버지는 삶의 모든 부분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요구해도 아버지는 받아들이며, 내가 어떤 일을 말해도 아버지는 알아들으신다. 아버지는 우리 안에 내재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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