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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의 마지막 운명

【갈릴리 예수산책】 소금과 빛 ❸

 

소금과 빛의 마지막 운명

 

소금과 빛의 존재로 산다는 것은 15절, 16절에 나오는 ‘착한 행실’이라는 말씀 속에서 그 마지막 운명이 결정된다. 착한 행실은 ‘칼로스’라는 그리스어다. 이 단어는 “나는 착한 목자라”,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할 때 쓰였다. 따라서 착한 행실이란 단순히 친절하고 배려하고 사람들에게 상냥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착한 행실이란 “나는 양을 위해서 죽는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선하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착한 행실이란 죽음을 각오하고 순종하고 자기를 비우고 십자가를 지는 것까지 생각하는 행위다. 소금이란 녹아 없어져 사라지는 것이니 죽는 것이다. 빛이란 세상에 노출되었으니 언제라도 공격을 받고 사라질 수 있으니 또한 죽는 것이다.

 

소금과 빛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다. 그 죽음의 결과를 예수님은 16절에서 언급하셨는데,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낙담한다. 죽음을 각오한 착한 행실의 결과가 사람들로부터의 칭찬이나 인정이나 영광이 아니다. 그 칭찬과 인정과 영광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 향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산상수훈을 힘들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착한 행실의 결과, 칭찬과 인정과 영광은 하늘의 아버지께로 돌아가고, 우리에게는 비난과 욕설과 저주가 돌아온다. 소금이 세상에서 무슨 영광을 얻을 것이며, 빛이 세상에서 무슨 찬양을 받겠는가? 소금은 세상이 까다롭고 부담스럽다고 밀어버릴 뿐이다. 빛은 어둠 속에서 죄를 지어야 하는 세상이 볼 때 거추장스럽고 번거롭다며 꺼버릴 뿐이다.

 

소금과 빛의 영향력이란 결국 사람들로부터의 비난과 공격이다. 빛으로 살면서 세상이 바른 길을 가게 하고, 소금의 짠 노릇을 해서 사회가 썩는 것을 막아주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이다. 그러므로 소금과 빛의 삶이 단순히 밥 잘 사주고, 매너 있게 행동하고, 친절을 베풀고, 먼저 배려하는 정도의 가벼운 행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 정도라면 우리에게는 칭찬과 인정이 돌아와야 한다. 박수를 받아야 하고 환영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결국 소금과 빛인 너희가 목숨을 걸고 착한 행실을 통해 세상의 부패를 막고 어둠을 걷어내지만, 그 일로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저주를 당할 수도 있으나, 이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면 괜찮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너는 죽고 하나님을 살게 할 수 있느냐? 너는 모욕을 당하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을 수 있겠느냐? 착한 행실로 인한 영광과 칭찬을 세상으로부터 받지 말고, 하늘로부터 받을 마음은 없느냐? 마음이 가난한 자, 정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의 보상이 천국인 것처럼, 너희의 착한 행실의 열매가 천국이면 어떻겠느냐? 세상에서는 인정받지 못해도 하늘에서 인정해주면 안되겠느냐?

 

우리를 심히 당혹스럽게 하는 말씀이다. 이기적인 욕심이나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받을 수 없고, 오직 양심을 열어야 받을 수 있는 매우 비장한 말씀이 바로 소금과 빛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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