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름의 역사 – 3 : 아도나이 여호와
【갈릴리 예수 산책】 예수와 아버지 - ❺
하나님 이름의 역사 3 : 아도나이 여호와
마지막으로 구약시대 후반부로 가면서 자주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데, 바로 ’아도나이‘다. 대략 440회 정도 나오는데, ’아도나이 여호와‘라는 표현만 280회 정도 사용되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주“라는 뜻이다. 엘로힘이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 츠바오트가 만군의 하나님, 만왕의 왕이었다면, 아도나이는 나의 주 하나님이다. 느낌이 전혀 다르지 않은가! 창조주라는 고백에서 이스라엘은 피조된 존재라는 자기정체성을 확립했고, 만군의 하나님, 만왕의 왕이라는 이름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군사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의식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이제 구약역사의 후반부로 가면서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라는 고백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주관하는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자신들은 그분의 종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흥미롭게도 아도나이라는 이름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에스겔이다. 무려 222회나 사용하고 있다. 에스겔이 누구인가? 남유다 왕국이 신흥 바벨론제국에게 망하여 3차례에 걸쳐 가장 똑똑한 왕족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70년 동안 포로로 끌려가 망국의 한으로 가득했던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다. 그를 포로시대 선지자라고 한다. 기존의 모든 제도와 권위가 무너진 시대다. 자신의 땅을 잃어버리고 남의 땅에서 살던 시대다. 두 세대를 지나면서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시대다. 여호와 신앙은 흐려만 갔다.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의 주인은 바벨론 제국이며, 자신들은 제국의 노예로 전락했다. 자신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흔들릴 때, 선지자 에스겔이 던진 강력한 메시지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너희의 주인이라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패하여 포로의 신세가 되어버린 이제 절실하게 불러야 하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도 아니고, 만군의 하나님이나 만왕의 왕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자꾸만 흐려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의 상실이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라를 잃고 70년째 타국에서 살고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어야 했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주인이라는 신앙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구약 후반 포로시대에 불려진 ’아도나이‘ 신앙은 주전 250년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최초의 성경 셉투아진트(칠십인역)에서 ’호 큐리오스‘로 번역되면서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구약에서 불렸던 하나님의 이름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서 출발하여 만군을 다스리고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거쳐 나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변화되어 갔다. 변화의 흐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공동체가 부르는 이름에서 개인이 부르는 이름으로 이동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명사 형태에서 이제는 간접적으로 부르는 대명사 형태로 변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포로시대를 지나면서 유대교가 탄생하고, 성경을 기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파같은 율법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으려는 종교적 분위기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역사는 엘에서 여호와로, 여호와에서 아도나이로 변해갔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 속에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표현되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새롭게 부르신 혁명적 하나님의 이름 ’아버지‘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