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 죄인이 되신 분
갈릴리 예수산책 – 예수와 아버지 ➊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 죄인이 되신 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 종교적 원인과 정치적 원인이다. 종교적 원인은 죽음을 촉발한 간접적 차원으로 볼 수 있고, 정치적 원인은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 차원이다. 종교적 이유는 종교지도자들로부터의 비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비난으로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 법적 효력도 없거니와 사법권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있었기 때문에 죽일 방법이 없다. 죽이려면 정치적 명분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죽음에 이르게 된 명분은 반역자라는 정치적 혐의였다. 죄패에 쓰여진대로 헤롯이 유대의 왕이 아니라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반역의 죄였다.
한 마디로 언어도단이다. 앞에서 우리가 <예수와 정치편>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 혹은 예수 운동은 결코 세상의 정치 운동이 아니었다. 적어도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중이 기대하고 기다려왔던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켜 다윗 왕조를 부활하려는 꿈을 꾸신 적이 없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정치적 프레임일 뿐이었다.
사실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진짜 원인은 종교적 이유였다.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기에 그토록 유대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움을 받으셨을까? 자신들에게 사법권이 없어 반역자의 굴레를 씌워서까지 죽이고 싶었던 예수의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이른바 그들에게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신성모독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요한복음은 이를 두 가지로 요약한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하나는 안식일에 행하신 파격적 행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신성모독적 사상이다. 안식일은 앞서 논쟁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일이 왜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무엇보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신론 혹은 신관이다. 자기가 믿는 신이 어떤 분인가를 인식하는 것과 신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부르는 신의 이름 속에는 신의 모든 속성이 들어있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신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그 종교의 본질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아버지 호칭 자체는 그 내용을 판단하기 전에 이미 그것 자체가 유대교 종교전통에서 아주 중요한 사안이란 것이다. 유대교의 근간을 뿌리째 뽑아낼 수 있는 주제이다.
그럼 내용 면에서는 어느 정도 충격적이고 혁명적이었길래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이 그토록 죽이고 싶어 했을까?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아예 부르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출애굽기나 신명기, 시편이나, 예언서 등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예들이 꽤나 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아버지 호칭을 가지고 그렇게 문제를 삼았을까? 예수님의 아버지 신학이 당시에 왜 그렇게 파격일 수밖에 없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이름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자.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게 한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