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시대의 세 가지 문화
로마의 군사, 헬라의 철학, 그리고 유대교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태어난 시대는 이미 이스라엘이 깊은 고통의 역사를 견디고 있을 때였다. 앗수르 제국이 이스라엘을 포함한 근동지역을 500년간 주도했고, 바벨론 제국에게는 70년 동안 지배받으면서 똑똑한 사람들 다 포로로 끌려갔고, 페르시아 제국에게는 200년을 점령당하여 고생하다가, 헬라 제국에게 300년을 지배당하던 중 마카비 형제가 나와서 유대를 겨우 독립하여 100년 정도 지속되었으나, 로마라는 제국의 등장으로 또 다시 식민지가 되는 비참한 역사의 수레바퀴 가운데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셨다.
구약과 신약 사이가 성경책에서는 한 장을 넘기는 데 1초도 안 걸리지만, 그 한 장을 넘기는데 들었던 실제의 역사는 400년이다. 그 기간에 있었던 역사를 신구약중간사라고 한다. 바로 이 기간의 역사를 다스렸던 제국이 그리스와 로마이다. 역사적으로 두 제국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는 로마가 다스린 지 100년 쯤 되었을 때이다. 율리우스 시저라고 들어보았는가? 옥타비아누스라고 들어보았는가? 디베리우스라고 들어보았는가? 바로 그런 시기에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방금 언급했던 세 명의 왕이 예수님 태어나기 전과 후의 전성기 황제들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태어나서 보니까 로마제국의 지배 속에 있는 유대라는 작은 피지배 민족이었던 것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예수님 당시의 문화는 이중적인 구조였다. 군사적으로는 로마가 다스렸지만, 문화적으로는 그리스, 곧 헬라 문화가 지배했다. 서양에서는 아직도 그리스 문화가 그들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다. 말을 잘하고 토론을 잘하고 잘난 척을 잘한다. 그들이 누구의 후예인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이다. 서양 고전의 전형인 그리스신화를 만든 사람들이다. 철학의 원조, 신화의 원조, 그리고 서양 인문학의 뿌리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주변을 보니까, 군인은 로마 사람들인데, 교육과 문화는 그리스 헬라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다. 언어로 말하면, 헬라어가 국제어일 때이다. 그래서 처음 신약성경에 쓰여진 언어는 로마제국이 쓰던 라틴어가 아니라 헬라어였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 구약성경을 그리스 성경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세상이 헬라 세상인데 왜 히브리어로 보냐고 해서 프톨레마이오스 2세라는 그리스 왕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킨다. 이것을 셉투아진트, 즉 70인역 성경이라고 한다. 그리스어로 된 최초의 구약성경이다. 사실 마태와 마가와 누가와 요한이 본 성경이란 것이 바로 셉투아진트(Septuagint, BC 300년)다.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보고 인용했던 거다.
그러니까 적어도 예수님은 어린 시절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보셨을 것이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와 세네카 등의 철학사상도 알고 계셨을 가능성이 높다.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의 역사도 익히 아셨을 것이다. 당시 지중해 지역에 퍼졌던 디오게네스 같은 견유학파, 스토아학파, 에피퀴로스 학파, 회의주의 학파 등 다양한 그리스 철학 사조들이 예수님 당시 지중해 연안에 유행했던 학문적 흐름이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 특히 바울의 경우는 그런 그리스 사상가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 가서 그리스 철학자들과 싸우는 내용들이 사도행전을 보면 나온다. 이처럼 그리스 문화와 로마제국의 군사문화가 대세였을 때 예수님은 태어나셨고 활동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