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말했으나 정치로 평가받다
갈릴리 예수산책 – 예수와 정치
종교를 말했으나 정치로 평가받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말씀과 행보를 정치적인 시각으로 살펴본 결과는 이렇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종교를 말했지만 세상은 정치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나라, 즉 종교적인 이야기였으나, 그것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일으킨 정치적 파장은 매우 컸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이야기했으나 세상은 그를 정치범으로 몰아 사형을 시켰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종교와 정치는 다른 영역이 아닌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던가? 고대시대 교부 터툴리아누스가 외쳤듯이 예루살렘(종교)과 아테네(정치)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다. 종교와 정치는 서로 다른 세상이고 다른 가치를 지향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종교의 가장 근원을 건드린다는 것은 곧 정치의 본령을 건드는 일이다.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가장 종교적일수록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다.
예수님의 가장 종교적 가르침이 무엇일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라”, “아버지가 너희 안에 계시고 너희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수없이 강조하셨다. 그렇게 무섭고 두려울 것 같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고, 그렇게 멀리 떨어져 계실 것 같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혁명적 선언이다. 이 말씀은 우리를 자유케 하고 해방하게 한다. 공포와 두려움의 하나님에서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 되었다. 율법의 종교에서 은혜의 종교로 전환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포의 종교는 공포의 정치를 낳고, 사랑과 은혜의 종교는 자유와 해방의 정치를 낳는다는 것이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믿는 신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고백하는가이다. 공포의 신을 믿는 사회는 공포의 문화가 자리 잡고, 율법적인 신을 고백하는 사회는 경직되고 정죄하는 문화가 퍼지며, 사랑과 평화의 인격적 신을 믿는 사회는 자유와 평등과 창조적인 문화가 꽃피울 수밖에 없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공포와 율법의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대 사회는 차별과 정죄와 공포의 사회였다. 예수님은 이런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정치 운동을 하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단지 인격적인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을 말했고 스스로 그렇게 실천하셨을 뿐이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 종교적 가르침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말이다.
창녀와 세리와 이방인을 자유롭게 만나면서 “인자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신 예수님의 메시지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신앙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 신앙은 당시 유대 사회의 결속 이데올로기, 곧 ‘선민사상’에 금을 가게 했다. 유대인과 이방인, 의인과 죄인, 선택받는 민족과 버림받은 민족으로 철저하게 차별하며 살고있는 유대인들에게 혼란과 분노를 일으켰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이런 행보는 오랜 세월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불평등한 계급구조, 차별적인 정치구조를 파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이다. 종교의 근원적 가치로 파고 들어간다는 것은 기존 정치 패러다임을 흔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