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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권력가로 비쳐진 예수님의 행보

갈릴리 예수산책 – 예수와 정치

 

정치 권력가로 비쳐진 예수님의 행보

복음서에 정치에 대한 노골적인 예수님의 어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미 정치의 흐름을 훤히 내다보고 계신 분으로 비쳐졌다. 심지어 제자들의 눈에 예수님은 정치 권력을 손에 쥘만한 미래의 권력자로 보였던 것이다. 이것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다. 그녀가 귀한 두 아들을 자신들의 가업을 잇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들여보낸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그녀와 그녀의 남편 세베대는 예수님에게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세속권력의 그림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빨리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살로메는 예수님께서 왕좌에 오르실 때 자신의 두 아들을 좌의정과 우의정으로 앉혀달라고 노골적으로 청탁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엄마의 치맛바람 이야기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데리고 다니셨다. 엄청난 무리들을 몰고 다니기도 하셨고, 잘 나가실 때는 5,000명, 4,000명이 그분 주위에 모여들어 팬덤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70명의 제자들이 따르기도 했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매우 정치적인 모습일 수 있다. 12명이든 70명이든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여 몰고 다닌다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행보로 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제자들 내에는 무장투쟁파 열심당원이 세 명이나 있었고, 로마의 앞잡이라 욕을 먹는 세리도 있었다. 다양한 정치적 지형을 보여주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이 정치가로서의 이미지가 가장 빛을 발한 사건은 단연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이다. 죽음을 향해 가는 길 치고는 너무나 화려한 왕 혹은 개선장군의 입성 장면이다. 왕이 걸어야 할 카펫은 거지같은 제자들의 옷으로 대체하고, 왕이 탈 하얀 말은 동네 가정집에서 키우는 어린 나귀가 대신하고, 승리의 깃발과 환호의 깃발은 종려나무 가지로 흔들어댔다. 놀라운 정치 패러디다. 예수님은 이 행사를 직접 연출하셨고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하셨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기대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고, 오늘만큼은 그들에게 맞추어 주기로 하신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신 상징적 사건이다.

 

빌라도 총독 앞에서의 재판은 철저히 정치적 혐의였다. 이른바 로마제국에 저항하여 유대의 독립을 쟁취하고 다윗의 왕국을 회복하고, 자신은 그 나라의 왕이 되려 한다는 전통적 메시아 사상의 성취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반역이다. 그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오간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의 주제는 ‘나라’였다. 내가 꿈꾸는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혐의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죄패에 쓰여진 문구는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마 27:37)” 였다. “구세주 예수”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더더욱 아니다. “유대의 왕” 예수였다. 철저히 정치적 구호이며 정치적 죄패였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을 가르치셨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고, 하나님과의 깊은 내적 관계를 추구하셨던 지극히 종교적이었던 예수님은 정작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매우 정치적인 이유로 정치범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 중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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