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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정치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갈릴리 예수 산책 – 예수와 정치 ①

 

예수님은 정치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정치는 진리나 사실보다 신념이나 이념이 앞서는 주제이다. 흔히들 배를 탔을 때 사람들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토론 주제가 있는데, 그게 바로 정치와 종교라고 한다. 왜냐 하면 진리는 객관적 사실이 무엇인지 확인하면 끝나지만, 신념은 무엇으로도 타협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싸움으로 번지다 결국 어느 한쪽은 배에서 던져져야 끝난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가족끼리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 정치 논쟁은 삼가는 것이 좋다. 서로를 증오하게 되고 갈라놓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슬프고 답답한 일이다. 원래 정치는 이렇게 극단적인 신념이나 이념을 담고 싸우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서양에서 막스 베버라는 사회학자는 정치란 “국가의 운영 또는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 정의했고, 데이비드 이스턴은 “가치의 권위적 배분 행위”라고 짧게 말했으며, 해럴드 라스웰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나라의 물질적, 정신적 재화를 어떻게 적절하게 잘 나누어 조화롭게 사느냐의 기술이다.

 

한자는 정치의 본질을 더 분명하게 밝혀준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르다의 ‘正’(정)과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친다는 攵(지)를 합친 말로,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회초리로 치는 것이다. 치(治)는 물(水)과 건축물(台)이 합하여 물의 넘침에 의한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란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로운 것,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다는 의미가 원래 뜻이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가 잘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정치를 이렇게 이해하고 노력한 결과라는 점에서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정치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면에서 보면 모욕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런 세속적인 정치적 틀에 가두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서 3년 동안 공개적으로 활동하신 삶은 철저하게 정치적 환경 속에 둘러싸여 계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직전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 3가지의 질문을 받으신다. 그 질문들은 사실 인간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세 가지 권력이었다. 경제 권력, 정치 권력, 종교 권력이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먹여 보고 민생을 살려보라는 경제 권력, 성전에서 뛰어내릴 때 천사들이 받아주는 것을 보여주라는 종교 권력, 그리고 영혼을 팔아 사탄에게 무릎 꿇고 얻을 천하만국을 다스릴 정치 권력의 유혹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질문과 요구는 예수님이 처음 하나님 나라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시작되었고, 십자가에 죽는 순간까지 따라다녔다. 예수님 자신이 아무리 세상 권력자들과 거리를 두고 비정치적인 삶을 사셨다 하더라도 그의 사역 자체는 이미 당시의 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 보여졌고, 정치적으로 해석되었고, 정치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정말로 정치와 상관 없는 분일까? 아니면 매우 정치적인 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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