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치유하실 때 한 가지만 보신다
예수님은 치유하실 때 한 가지만 보신다
예수님은 항상 자신에게 나아온 사람들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하셨다. 관찰을 통해 보고자 하신 것은 환자의 태도였다. 진심으로 병을 고치고자 하는 태도인가? 정말로 살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가? 예수님이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는가? 이것은 예수님께서 치유하실 때 꼭 짚고 넘어가신 조건이었다. 바고 믿음이라는 치유의 핵이었다. 이것은 예수님 치유의 아주 독특한 점이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찾아서 일방적으로 고치신 적이 거의 없다. 그들이 찾아왔을 때만 고치셨다. 그리고 꼭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네가 원하느냐?‘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내거시는 조건은 병자의 믿음이다. 낫고자 하는 의지와 예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셨다. 그리고 치유 후의 꼭 빠지지 않는 말씀이 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치유의 원인을 바로 병자에게 돌리신다. 이것은 예수님의 겸손이 아니다. 오히려 치유의 핵심 원리를 반복적으로 강조하시기 위함이다.
나병환자가 예수께 나아와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8:2)“는 말을 듣고 하신 말씀이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셨다. 시각장애인들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9:27)“라고 외쳤을 때, 예수님은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고 확인하셨다. 그들이 믿는다고 대답할 때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 하셨다. 환자가 간절히 원하면 예수님도 원하셨고, 환자가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면 예수님도 확실한 치유로 응답하셨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스쳤을 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막 5:30)“고 반응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님은 여기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press) 것“과 ”내게 손을 댄(touch) 것“을 구별하셨다. 제자들이 미는 것은 의미없는 프레스(물리적인 힘)일 뿐이다. 그러나 여인이 손을 댄 것은 깊은 터치(영적 열망의 힘)다. 그 힘이 무엇인가? 바로 믿음이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막 5:28).“ 생각의 믿음이다. 이에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평가하신다.
간접적인 믿음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환자의 믿음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믿음이다. 그는 너무 아프기에 자신이 살아날 소망이나 믿음을 가질 여력조차 없다. 예수님은 그때 그 환자를 살리는 믿음을 주변 사람들에게서 찾았다. 백부장이 그러했고, 베드로의 장모가 그랬으며,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온 네 친구들이 그랬으며,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러했다. 날 때부터 귀신에 시달려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을 한탄하시면서 예수님은 그 믿음을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찾으셨다(막 9:14~29).
그때 그가 한 말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22절)“ 였다. 이 말에 예수님은 또 화가 나셨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영어로 ”If you can“이다. 조건절이다. ”할 수 있으시면 하시고, 못하시면 어쩔 수 없지요“ 라는 의미다. 예수님을 화나게 한 것은 그 아버지의 분명치 않은 믿음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23절)“고 다시 말하라 촉구하신다. 정신이 번쩍 든 아버지가 말을 바꾼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24절).“ 결국 믿음이었다.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예수 치유의 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