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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게 임하는 치유의 은혜

사람마다 다르게 임하는 치유의 은혜

 

우리는 흔히 예수님께서 치유하실 때 손으로 머리에 손을 얹는 안수 혹은 입으로 명령하는 선포를 쉽게 떠오른다. 그래서 치유 집회를 보면, 치유자들이 주로 할 수 있는 행위는 안수 아니면 말씀 선포 정도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치유의 모습은 생각보다 매우 다양했음을 복음서는 보여준다.

 

사람마다 달랐고, 질병마다 달랐고, 믿음마다 달랐고, 상황에 따라 달랐다. 어떤 사람에게는 무심하게 허락하는 정도의 말씀만으로도 고쳐주셨다. 어떤 이에게는 병을 꾸짖어 병을 떠나게 하셨다. 어떤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어 안수하시면서 말씀으로 명령하시기도 하셨다. 어떤 사람에게는 마치 민간요법 의사처럼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씻고 오라고  하셨다. 심지어 어떤 여인에게는 자신의 옷자락을 만지도록 내어줌으로써 아무런 행위나 말씀 없이도 낫게 하셨다. 이것들은 예수님이 환자에게 직접 행한 치유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고치신 예도 많다. 백부장의 종을 고치시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환자는 백부장의 종이었고, 고쳐달라고 요청한 사람은 백부장이었으며, 그 요청을 전달한 사람은 백부장을 존경하는 그 지역의 장로들이었다. 예수께서는 환자에게 직접 가셔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백부장은 또 다른 종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시지 말라고 하신다. 오실 필요 없이 그냥 거기서 그냥 말씀만 해달라고 요청한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말을 들으시고 굉장히 놀라워하시면서 이스라엘 최고의 믿음이라 극찬하셨다.

 

왜 그랬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환자 당사자를 만나지도 못하셨고, 백부장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신다. 다만 모든 게 간접적인 메시지 전달로만 이루어졌다. 직접 보지 않고 말씀으로만 듣기만 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에 놀라신 것이다. 사실 믿음이란 굳이 눈으로 보지 않고도 신뢰하는 것이 본질이다. 백부장은 바로 믿음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를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그를 이스라엘 최고의 믿음을 소유한 자라고 평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방식에는 하나의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 받고 나서 남들에게 간증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치유 받은 이야기를 간증하면 듣는 사람들은 그가 경험한 치유가 전부인 줄 착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은 비결을 따라서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금식기도를 해서 나았다고 간증한다. 어떤 이는 찬양하다가 암덩어리가 떨어져 나갔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사망 선고를 받고 모든 걸 접고 전도만 하다가 치유되었다고 간증한다. 모두가 믿음의 행위이지만 그 방식은 사람마다, 병에 따라, 처지에 따라 다 다르다.

 

치유는 그 사람의 생각, 습관, 감정, 상황에 따라 다르게 펼쳐진다. 기도해서 병이 나을 수도 있지만 죽을 수도 있다. 안수 받아서 병이 나을 수도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사람의 병을 고치실 때 사람마다, 질병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접근하셨기 때문에 나의 치유를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것은 마치 내가 특별한 민간요법이나 건강식품으로 암이 나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권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고통을 받는 한 영혼에게 주목하셨고, 그 영혼만이 당하는 처지와 형편을 살피셨으며, 그에게 맞는 가장 좋은 치유를 베푸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수 있으나 사람마다 다르게 임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은혜를 자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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