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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압과 혼돈과 절망의 시대 속으로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은 난세에 나신 영웅 같은 존재다. 이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는 거대한 로마제국의 식민지라는 폭압적 상황에서 고통을 받았고, 문화적으로는 그리스 헬라 문화의 인본주의와 다신교주의로 인해 혼란스러워했으며, 이로 인해 유대교의 정체성은 뿌리째 흔들리는 거대한 풍랑의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당장 이스라엘 사람들은 본토에서는 로마총독이라는 권력자 앞에 시달려야 했고, 유대인도 아니면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다스리는 헤롯 집안으로부터 고통을 받아야 했고, 멀리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모셔야 하는 삼중의 고통을 살아내야 했다. 여기에 로마제국과 헤롯가문에 빌붙어 권력층 행사를 하는 제사장들과 같은 종교기득권자들의 종교적 횡포와 갑질은 대부분의 유대 백성들에게 메시아 대망의 소원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한편 헤롯대왕이 죽으면서 유대의 민심은 폭발하면서 다윗 왕조를 회복하고자 하는 메시아 운동이 일어난다. 당시 메시아 운동이란 단순한 영적 회복 운동을 넘어 유대민족의 독립이라는 정치 운동이었다. 갈릴리에서는 유다라는 사람이 나타나 로마가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호구조사를 실시하는 것에 반발하여 봉기했다. 헤롯의 부하로 있던 시몬은 자신을 왕이라 칭하면서 일어났다. 양치기 출신의 아트롱게스는 자신을 제2의 다윗이라고 주장하면서 나타났다. 물론 모두 로마로부터 진압되었고, 이로 인해 2천 명 이상이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참극을 맞보게 된다.

 

헤롯대왕 이후 세 아들, 헤롯 아켈라오, 헤롯 안다바스, 헤롯 빌립이 이스라엘을 나누어 다스리는 분봉왕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경제적 부담은 가중되었다. 로마 황제에 대한 세 분봉왕의 충성심 경쟁은 쓸데없는 신도시 건설로 나타난다. 헤롯대왕이 건설한 지중해의 인공 항구도시 가이사랴를 비롯하여, 그의 둘째 아들 헤롯 안디바스는 세포리스를 재건하여 수도로 했다가 다시 디베랴를 건설하여 천도한다. 헤롯 빌립은 가이사랴 빌립보를 건설한다. 문제는 막대한 재정이 낭비된다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징수하는 원인이 되었고, 전통적인 농업경제를 파괴했다. 여기에다 대규모 공연장이나 운동장, 극장, 신전 건설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들기에 충분했다.

 

언어 또한 전통 히브리어를 쓰지 못하고 아람어가 널리 사용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그리스어와 히브리어가 부분적으로 사용되는 복합적인 환경이었다. 언어의 혼잡은 곧 영혼의 불안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언어의 분열은 정신의 분열이자 집단의 분리를 부추긴다. 가는 곳마다 로마황제 숭배가 가속화되었다.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출입문 위에 로마를 상징하는 황금 독수리상을 설치하는 등 유대인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그렇다고 유대의 종교엘리트들이 이에 책임감 있게 맞선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종교분파 활동에만 열을 올렸다. 그들은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는 경직된 율법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대제사장이나 사두개파를 비롯하여 율법엄숙주의자라 할 수 있는 바리새파는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겼다. 누구보다도 깨끗함을 추구하는 에세네파 조차도 소외되고 고통받는 대다수 백성들의 고통에 어떠한 위로와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날 리 없다”는 편견이 그 시대 이스라엘을 주름잡고 있을 때, 혼돈과 폭압과 절망이 유대 전 지역을 덮고 있을 때, 바로 이곳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태어났고 자랐다. 그리고 그는 나이 30세가 되던 해, 드디어 암울한 역사의 무대를 향해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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